[2013.05.22 조선일보] 이기수 회장 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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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5.22 03:03
장기적 관점에서 사법미래像 제시할 독자연구기관 절실
實務아는 법관들이 연구하면 더 효과적
행정·입법부처럼 '사법 정책 연구원' 大法院에 만들어야
이기수 前 고려대 총장
필자는 2011년 4월부터 2년간 대법원 산하 양형위원회의 3기 위원장으로 재직하였다. 그동안 양형위원회는 국민의 건전한 법 감정에 맞는 양형 기준의 정립을 위하여 노력해왔으며, 아울러 그 노력의 결실로, 최근 대법원이 적정한 양형 기준 적용의 전제로서 양형심리 절차를 강화하는 '양형심리모델'을 시범실시하기로 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양형위원장으로서 가까이에서 지켜본 바로는, 대법원은 지금까지 재판 제도 등에 대한 단기적 개선 과제는 훌륭히 소화해 왔다고 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현재 대법원이 최소 10년 이상의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법의 바람직한 미래의 모습을 제시하거나, 그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업무를 수행할 여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아쉽게 생각해 왔다. 더욱이 현재 대법원에는 '법조 일원화에 따른 법관 인사제도 개선'을 비롯하여, '외국과의 사법교류 강화' '통일 대비 사법연구' 등 굵직굵직한 중장기적 과제들이 산적해 있고, 국내외적으로 사법 환경이 급변함에도 사법부에 이를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독자적인 정책연구기관이 없다는 점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사실 사법부에 정책연구기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 법원행정처 내 사법정책실이 사법 제도 개선에 관한 연구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인력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사법 정책 관련 현안의 처리에 바빠 장기적인 연구 과제를 충분히 검토할 여건이 되지 못한다. 또한 법관의 참여 없이 이루어지는 외부 연구 용역에서도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를 기대하기 어렵고, 그 결과물도 바로 사법 현실에 적용하기에는 부족한 측면이 있다.
필자는 미래의 성공적인 사법 제도 개선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우수한 자원들이 집중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법관들이 그동안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사법권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개선해야 한다고 느끼는 부분에 대해 깊이 있는 연구 성과를 창출할 필요가 있다. 이와 아울러 관계 기관이나 법률전문가 및 국민 일반의 여론을 폭넓게 수용하는 과정도 매우 중요하다. 결국 법관이 연구 업무와 실무 업무에 동시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함은 물론이고, 외부의 전문 연구 인력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연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여 대법원 산하에 '사법정책연구기관'을 설립하여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또한 사법정책연구기관에서의 연구 방법과 관련해서도, 법관들의 법률적인 관점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법철학·법심리학·법경제학·법사회학 등 법 인접 학문의 연구 성과를 아우를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법부의 정책연구기관 설립이 필요하다는 논의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이미 지난 1994년도에 대법원에 설치된 '사법제도발전위원회'가 독립적인 연구기관인 '사법정책연구원'을 대법원 산하에 설립할 필요가 있다는 건의를 낸 바 있고,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그 설립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계속됐다. 행정부는 이미 40여 개의 정부 출연 연구기관을 운영 중이고, 입법부는 국회예산정책처 등 2개의 국회 산하 독자적 연구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도 2011년도에 산하에 헌법재판연구원을 설립하여 헌법 및 헌법재판제도의 발전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법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토대로 하는 법 실행은 절대로 지나친 일이 아니다. 일찍이 중국의 명재상이었던 관자가 국가의 흥망을 진단하는 팔관(八觀)의 하나로 법의 올바른 제정과 시행을 들었던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대법원에도 하루빨리 사법부의 위상에 걸맞은 사법정책연구기관이 설립되어, 대법원이 법조 실무에 필요하면서도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된 미래 사법의 희망찬 청사진을 제시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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