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석 목사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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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혁 목사님께 드리는 苦言
존경하는 김명혁목사님, 기독교사회책임의 후배 목사들이 목사님께 편지를 드립니다.
목사님에 대한 존경심은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만 연평도 폭격사건에 대한 목사님의 의견과 우리 생각이 너무 달라 고민 끝에 우리 생각을 공개적으로 밝히게 되었습니다. 또 이러한 표명이 기독교의 입장 정리를 위해서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목사님이 “이번 사건이 불법적 도발인 만큼 북한에 큰 책임이 있지만, 남북관계의 경색이 기본적인 배경이므로 무조건 사과하라고 하면 남북관계에 도움이 안 되며 남북간 대화가 필요하다”라고 하신 말씀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를 경색시킨 것이 아니라 남북관계를 바로잡으려고 한 것뿐입니다. 다만 북한이 정상화를 반대하면서 남북관계를 옛날로 되돌리려고 한 것뿐입니다. 지난 날 김대중, 노무현정부가 실현한 남북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아닙니다. 김정일 정권의 비위를 맞추고 퍼주고 해서 이룬 사이비 평화일 따름입니다. 진정한 평화는 인권이 실현되는 평화입니다. 한국이 인권개선을 주장하는 순간 그대로 깨어지는 평화는 가짜평화, 위장평화입니다.
북한인권은 외면한 채로 한반도의 평화만을 강조하는 것은 대단히 이기적인 생각입니다. 북한주민이 당하는 혹독한 인권유린을 외면하는 대가로 우리의 생명과 재산과 안전을 북한 김정일로부터 보장받으려는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이 생각은 일제시대의 가쯔라-테프트 밀약과 같은 것입니다. 이 밀약은 일본이 한반도를 지배하는 것을 미국이 용인하고 미국이 필리핀을 지배하는 것을 일본이 용인하는 밀약입니다. 이것은 두 수퍼파워의 평화조약이기 때문에 세계평화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우리 민족에게는 한없는 고통을 안겨주는 밀약입니다. 우리들 기독교인은 이런 이기적인 생각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북한인권이 개선되어 북한체제가 진실되게 변화하는 것만이 진정한 남북관계의 개선입니다. 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남북관계가 경색되었나? 이명박 정부가 북한인권 문제를 제기하면서 비위맞추기, 퍼주기가 아닌 정상적인 남북관계를 희망했는데 북한이 이러한 변화를 거부했! 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한반도에서는 지난 날의 잘못된 남북관계를 시정하려는 이명박 정부와 다시 옛날로 돌아가려는 김정일 정권 사이의 힘겨루기가 한창입니다. 북한이 천안함도 폭침시키고 연평도도 포격하는 근본이유도 김정일이 남북관계를 과거 노무현정권 시절로 되돌리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폭침과 포격을 거듭하면 남한 안에서 이명박 정부를 반대하는 움직임이 커져 다시 옛날로 되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옛날로 되돌아가면 어떻게 되는가? 그것은 우리가 북핵의 위협 하에서 굴종과 굴욕과 노예의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북한의 말에 굴종하지 않으면 북한은 계속 도발하면서 우리를 길들이려고 할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국내에서 “화해하자 화해하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사실 이 말은 “굴종하자 굴종하자”는 말의 고상한 표현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죽어도 옛날로 되돌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온 길을 흔들림이 없이 의연하게 가야 합니다. 국제사회와 공조하여 북한이 기필코 핵도 포기하고 인권도 개선하고 개혁개방도 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과거 레이건 대통령이 소신을 가지고 소련체제와 맞섰습니다. 그래서 끝내는 소련이 해체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레이건을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지금은 모두 레이건에게 감사해 합니다. 역사는 종종 고통과 인내를 요구합니다. 그런데 이 어려움을 견딜 수 있어야 아름다운 미래를 향유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김명혁 목사님께서는 원수사랑을 강조하십니다. 당연히 우리는 원수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무엇이 원수를 사랑하는 행동인가 하는 점입니다. 어린 아이가 잘못된 행실을 하면 사랑의 매를 들어야 합니다. 도박중독에 빠진 사람은 강제로라도 도박에서 벗어나기 위한 프로그램에 보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진정으로 김정일 정권을 사랑한다면 김정일 정권이 바른 길로 가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북한이 핵을 폐기하고 인권을 개선하고 군사도발 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만이 진정으로 북한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북한의 악행을 방치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셋째로 김명혁 목사님은 지금 분노하고 규탄할 것이 아니라 회개할 때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분노와 규탄 그리고 회개는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동전의 양면일 따름입니다. 예수님도 독사의 자식들아 하며 분노하고 규탄하셨습니다. 구약으로 가면 예언자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릅니다. 악행에 대해 분노하지 않고 선을 행할 수 없습니다. 지난날 한국교회가 군사독재정권의 악행에 대해 분노했기 때문에 온갖 고난을 감수하면서 투쟁했습니다. 또 그랬기 때문에 지금 우리는 민주주의를 향유하고 있습니다. 6.25때 기독교가 회개기도만 했다면 그것은 참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총을 들고 나가 싸워야 합니다. 당시 수많은 젊은이들이 학도병으로 나가 목숨을 바쳤습니다. 기독교인도 이 대오에 동참했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기독교는 지탄의 대상이 되었을 것입니다.
또 우리가 드리는 회개기도의 내용도 명확히 해야 합니다. 세속적이고 분열을 일삼는 한국교회에 대해서도 회개해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지난 천안함 폭침 사건에 바르게 대처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는 일입니다. 당시 우리국민 중에 북한의 실체를 잘 모르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천안함 폭침사건에 대해 3, 40대 국민의 40%가 북한의 소행임을 믿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 국민이 단합해서 천안함 사건에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결과가 김정일을 다시 도발하게 만들었습니다. 도발을 해야 남한에서 이명박정부의 대북 강경책 때문에 이번 일이 터졌다는 인식이 퍼져 남한에서 우파정권이 무너질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건이 지난 날의 나이브한 대북인식을 바꾸어 북의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한 젊은이들이 많아진 것은 불행 중 다행입니다. 진주만 폭격이 있었을 때 미국국민은 보수, 진보할 것 없이 혼연일체가 되었습니다. 온 국민이 단결해서 일본, 독일 제국주의 세력과 싸워 이차대전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김정일 세력은 이차 대전 당시의 히틀러나 일본제국주의보다 더 악한, 사탄의 세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 강하게 단결해서 이 세력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야 합니다.
목사님 말씀대로 기독교인은 당연히 화해와 평화를 위해 일해야 합니다. 그러나 회칠한 무덤과 같은 거짓평화는 안 됩니다. 북한체제가 변하고 김정일이 변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화해이고 평화입니다. 바로 이점을 지적해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평화를 주러 온줄 생각지 말라 검을 주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사탄의 세력에 맞서서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북이 도발하면 우리는 교전규칙에 따라 단호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후루시쵸프가 큐바에 미사일기지를 만들었을 때 케네디 대통령은 3차대전 발발 위험을 무릅쓰고 해상봉쇄를 명령했습니다. 그 결과 쿠바 미사일 기지 건설을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평화와 안보는 이 정도의 각오와 결단이 있어야 지킬 수 있습니다. 미국이 큐바 미사일의 위협 하에서 살기를 거부했듯이 우리도 김정일의 위협 하에서 살기를 원치 않는다면 목숨바쳐 대한민국을 지킬 각오를 해야 합니다.
목사님께서는 한기총보고 규탄대회를 자제해 달라고 하셨지만 우리는 오히려 목사님께 국론을 분열시키지 않으시기를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국민이 단합된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북한을 강력하게 응징해서 북한으로 하여금 도발을 뼈저리게 후회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북의 도발을 막을 수 있습니다.
넷째로 김명혁목사님은 손양원목사님의 예를 들면서 긍휼과 용서와 사랑으로 화해를 위해 노력하자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은 개인적 삶에서는 귀감이 되는 소중한 말씀이지만 한국이 그런 자세로 북한을 상대할 수 없습니다. 라인홀드 니버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인간의 본성에 罪가 있어서 개인은 도덕적이 될 수 있어도 사회는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더구나 김정일 정권과 같이 지구상에서 가장 惡한 정권을 긍휼과 용서와 사랑으로 대하자는 것은 순진하기 그지없는 감상주의일 뿐입니다. 우리가 이 입장을 취하면 결과적으로 김정일 세력에게 이용만 당할 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비들기같이 양순하기만 하지 말고 뱀같이 지혜로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감상주의야말로 지금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태도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국민이 대동단결하여 북의 도발을 막기 위한 현실적 대책을 철저하게 강구한 다음에는 우리는 어떤 형태의 화해노력도 지지합니다.
첫째로 전쟁으로 擴戰되는 일을 막아야 합니다. 아무리 군사적으로 단호함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더라도 북을 향해 선제공격을 하면 안 되고 북에 대한 응징도 할 수 있는 한 非군사적인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 오히려 그 방법이 훨씬 더 큰 고통을 안겨줍니다. 또 전쟁을 방지하기 위한 국제적인 노력을 계속해야 합니다.
둘째로 아무리 우리가 북한정권에 대해 실망하더라도 북한도 인권개선을 하고 개혁개방을 하여 국제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실낱같은 가능성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끝까지 애정을 가지고 상대방을 설득해야 합니다.
셋째로 우리 동포가 굶어 죽어갈 때에는 반드시 식량을 도와야 합니다. 다만 김정일 정권에게 식량을 갖다 줄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 식량이 굶는 사람들에게 전해지지 않고 자기들의 체제를 공고히 하는데 사용될 것입니다. 이 경우 우리가 두만강변에서 직접 도우면 됩니다. 지금 북한이 각 郡에 자력갱생으로 식량난 문제를 해결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에 두만강변에서 얼마든지 직접 돕기가 가능합니다. 조선족 동포를 보내어 투명성을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 방법으로 돕는 것을 북한이 못하게 한다면 그때는 북한주민들도 들고 일어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과 같은 극한상황 속에서도 동족사랑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기독교의 계명입니다. 이 글로 목사님께 범한 무례를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2010년 11월 29일
기독교사회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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